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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나

(@MS2_siyina)

 “아라, 네이네이~!”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샤텐 님!”

 

 고요한 하늘 위를 유영하고 있는 거대한 함선, 스카이 포트리스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찾아왔다. 폭죽을 팡, 하고 터트리는 샤텐과 그 소리에 놀라는 네이린.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평소와 다름 없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마저 이제는 익숙할 정도의 일상이었다. 뼈가 아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12월의 중순. 대형 이벤트인 크리스마스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

 

 샤텐을 향해 어김없이 잔소리를 쏟아내며 화를 내고 있는 네이린과 그런 네이린을 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지으며 네이네이는 너무 엄격하다니까~ 라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메이슨은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안경을 올렸고, 콘대르는 크하하! 하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사이에 있는 함장인 블리체는 언제나와 다름없는 풍경에 안도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지상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쩌면 눈송이가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함선 내에 돌기 시작했다. 다른 대원들 역시 그 소식에 들뜬 듯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크리스마스를 지상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벤트는 이벤트. 크리스마스란 그들에게 있어서 거대한 이벤트였다.

 

 레이더로 함선 주변을 살피던 네이린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것인지 손벽을 치며 간부들의 시선을 모았다. 우리, 선물 교환하면 어때요?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라며 생기발랄한, 언제나와 같은 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하였다.

 

 “오, 그럼 부장님께는 발모제를 드리면 되나?”

 

 “커흠!”

 

 “아! 샤텐 님, 정말! 장난치지 마시구요!”

 

 샤텐의 장난스러운 말에 콘대르가 헛기침을 하였고, 네이린이 언제나와 같이 반응을 하였다. 그마저도 재밌다는 듯, 샤텐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럼에도 네이린의 말에 그 누구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함장인 블리체의 암묵적인 허락에 의해 들뜬 기운이 간부들 사이에 퍼졌다. 그 어느때보다 기운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일 것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예상했다.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 10일. 그 사이에 어떤 선물을 가져올지 서로는 서로에게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함선 내부에서는 은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콘대르 부장은 트라이아의 잡화점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오기를 며칠 째 반복하고 있으며 네이린 부관은 전례없는 속도로 일처리를 끝내고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루미나이츠의 메이슨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검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샤텐은 평소보다는 조금 더 많은 이들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또 뭐라도 터지는 거 아냐? 모험가 님 불러와야 하나? 그렇게 수군거리는 이들도 하나둘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언 가장 큰 소문거리는 함장 블리체였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장난감 가게나 인형들을 늘여놓은 곳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지나가기를 며칠, 그 안에 들어가 한참을 고민하기를 또 며칠을 반복하니 함장님이 어디 아프신 것은 아니냐며 모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네가 잘못 본 것 아니냐며 소문의 원인인 대원에게 물어보았으나 이후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목격한 다른 대원들에 의해 하나둘 소문이 확실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안심한 것은 모험가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특별한 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큰 일을 앞두고서는 함장이 평소에 가지도 않던 장난감 가게나 인형따위를 한참이나 머물고 있겠는가. 그런 이가 없지는 않을테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함장은 아니었다. 그녀는 대원을 생각하는 함장이면서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획을 짜는 철두철미한 철벽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대원들은 모두 안심하고 크리스마스의 열기를 즐겼다.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단 3일.

 

 ***

 크리스마스 이브, 상공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기온이 더욱 서늘했다. 늦은 밤에는 눈까지 올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부분이 휴가를 즐기러 밖으로 나갔고, 스카이 포트리스에는 간부 넷과 함장, 그리고 비상시를 대비한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벌써 내일이 크리스마스네요! 그린후드 쪽에서도 다들 신나서 난리예요!”

 

 네이린의 기대가 가득한 맑은 목소리가 함선 내에 울렸다. 우후후, 하고 웃는 목소리가 청량하게 울려퍼졌다. 네이린을 바라보던 샤텐 역시 즐거운 듯 미소를 한가득 지었다. 우리도 장난 아니야. 첩보 쪽에 재능이 있는 것들이 이런 건 꼭 챙긴다니까? 라며 자신들의 부하들을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고보니 부장님은 어제 좀 오래 나가 계시던데, 어디 다녀오셨길래 그렇게 오래 나가 계셨담?”

 

 “이미 다 아는 놈이 물어보는 것도 재미없다, 이 녀석아! 나 때는 말이야, 감히 윗사람 뒤를 밟을 생각조차 못했어!”

 

 “으하핫, 들켰네! 좀 봐줘요~”

 

 콘대르의 호통에 샤텐이 태연히 웃어보였다. 감히 그 누가 콘대르 부장의 뒤를 밟는 행위를 하고 그의 주변에 첩보원을 심어놓는 행위를 하겠는가, 한다면 그 ‘누가’는 단언컨데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샤텐을 가리킬 것이었다. 샤텐 또한 자신을 잘 아는 이였고, 콘대르 역시 여태껏 함께 해온 시간과 그간의 사건들로 인해 샤텐에 대해 파악을 끝마친 상태였다.

 

 태연히 웃어넘기려는 샤텐의 모습에 콘대르의 한숨이 더욱 깊어지고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이크, 부장님 화났다. 네이네이, 나 좀 숨겨줘! 황급히 네이린의 뒤에 숨어버리는 샤텐을 향해 네이린은 샤텐 님이 일으킨 일이지 않느냐며 알아서 해결하라며 오히려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대체 어디를 다녀오신 겁니까?”

 

 “엉? 별 건 아니고. 근위대 녀석들은 연휴에도 쉬지않고 교대하면서 지내잖냐. 그래서 간식 좀 주고 왔다.”

 

 “…혹시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습니까?”

 

 “그건 나보다 네이네이가 더 잘 알 걸?”

 

 “아뇨, 해는 평소랑 똑같이 동쪽에서 떴어요.”

 

 콘대르의 말에 눈을 크게 뜬 메이슨을 시작으로 샤텐과 네이린은 정말 의외라는 표정을 하다가 그를 앞에 두고서 태연히 수군거렸다. 다시 한 번 확인해보십시오. 해가 서쪽에서 떴을 것 같은데요. 몇 번이나 돌려봐도 동쪽이에요. 그럴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보며 콘대르는 주먹을 꽉 쥐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 녀석들!!”

 

 이런, 화나신 모양입니다. 도망쳐, 도망쳐~! 함장님~! 부산스럽게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장난치는 이들 사이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된 블리체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뻣뻣하게 서 있으니 샤텐이 그녀를 보며 크하하! 하며 크게 웃었다. 함장님 지금 적응을 못하고 계시는데요! 샤텐의 말에 블리체가 이마를 짚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하다가 그저 그들끼리 장난친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선물 준비는 끝나셨어요? 저희 선물교환 하기로 했잖아요!”

 

 네이린의 말에 서로 눈치를 슬쩍 보다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정도 물건을 정했고 하루 전이기는 하지만 대충 고르기는 했다는 고개짓이었다. 그들의 대답에 네이린은 신난 듯 와! 하고 손뼉을 짝, 쳤다. 샤텐은 네이린을 향해 네이네이는 준비 다 한 거냐고 물었고, 네이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무리만 하면 끝나요! 하며 답했다.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단 하루. 늦은 밤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밝힐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각자의 선물이 무엇일지 기대를 품고 하루를 지내었다.

 

***

 

 

 눈송이가 가득 내려 트라이아의 아침을 밝혔다. 손이 비는 근위대원들은 길가에 쌓인 눈들을 구석으로 쓸어내었고 아이들은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지며 눈싸움을 하며 장난도 쳤다. 근위대원들 역시 종종 아이들의 장난에 어울려주기도 하였다. 헤네시스에서도 눈사람을 만들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가져다 눈사람의 팔을 만들어주며 노는 아침이 밝았다. 환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았다.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은 것은 빅토리아 아일랜드 뿐만이 아니었다. 스카이 포트리스에서도 아침이 찾아왔다. 정말 극소수의, 최소전력만을 남기고 다른 이들은 모두 트라이아로 내려갔다. 함선 내에는 간부들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전력이 부족하는가,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헛소리에 불과할 터였다.

 

 아침부터 회의실로 모두가 모였다. 회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중요하다면 중요한 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이린은 바구니에 무언가를 가득 담아왔으며, 샤텐은 조그마한 상자에 치밀하게 숨겨 회의실에 들어왔다. 콘대르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간식거리가 가득 담겨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것은 함장인 블리체였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이는 메이슨이 유일했다.

 

 “뭐예요, 메이슨 님! 선물교환인데 아무것도 없으신 거예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제대로 챙겨왔습니다.”

 

 메이슨이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조그마한 보석이 박힌 작은 액세서리 네 개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한 눈에 봐도 어떤 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보시면 주인이 누구인지 아실 테니 가져가시지요. 메이슨이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훗, 하고 웃었다. 작은 브로치의 형태를 한 보석은 전투 중에도, 현장 임무 중에도 거슬릴 일은 없을 듯 했다.

 와아! 하며 네이린이 가장 먼저 초록빛의 보석을 가져가고 샤텐이 보라색의 보석을, 블리체는 붉은색, 콘대르는 노란색의 보석이 달린 브로치를 가져갔다. 샤텐은 세심한 눈초리로 메이슨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깨에 항상 걸치고 다니는 코트에는 이미 푸른색의 작은 브로치가 달려있었다. 푸핫! 하고 웃는 샤텐을 보며 콘대르가 뭐 웃긴 거라도 봤냐며 물어봤으나 샤텐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것보다 나는 함장님은 뭘 준비하셨는지 궁금한데!”

 

 “아, 그것이….”

 

 한참을 머뭇거리던 블리체가 테이블 밑에서 꺼낸 것은 각자 한 사람에게 충분히 안길 정도의 크기의 선물상자였다. 풀어보는 건 나중에 하도록. 라며 헛기침을 하며 쑥스러운 것인지 답지않은 모습을 보였다. 콘대르는 그런 함장의 모습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거, 우리 함장님도 여린 면이 있으신 분이었구만! 하고 웃어보인 그는 테이블 위에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잔뜩 늘여놓았다.

 

 “거, 선물은 뭘 줘야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혀서 역시 연휴 하면 놀고 먹는 것 아니겠냐!”

 

 크하하, 하고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그를 바라보던 이들 역시 마주 웃었다. 그럼 우리 이거 늘여놓고 먹을까요! 라는 소리에 샤텐이 동시에 봉투를 하나 북, 뜯기 시작했다. 네이린은 소중히 가져온 바구니 안에서 기다란 실타래를 꺼내들었다.

 

 “이건 함장님 거, 이건 샤텐 님, 이건 콘대르 님, 이건 메이슨 님!”

 

 “이게 다 뭐여?”

 

 “뭐긴요! 제가 여태껏 열심히 뜬 목도리죠!”

 

 네이린은 엣헴, 하고 자랑스러운 듯 으쓱이며 한 명씩 나누어주었다. 부드러운 실로 넓게 뜬 목도리는 길이가 길어 세 번 정도 감고도 길이가 남을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콘대르에게는 세 번 정도 감으면 충분할 정도의 길이였다. 이번 겨울은 따듯하겠구만! 하며 웃는 콘대르의 웃음소리에 샤텐은 에헤이, 내 것도 빼먹으면 안 된다며 상자를 올려두었다.

 

 “네이네이가 목도리를 뜨고 있는 건 진작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목도리 대신 이걸 준비했죠!”

 

 짜잔! 하며 보여준 것은 겨울용 장갑이었다. 상대적으로 바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콘대르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선물 교환을 끝마치고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나눠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샤텐의 장난에 네이린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있었으나 다들 웃으며 넘어갔다.

 

 눈송이가 폴폴 떨어지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높여주고 놀거리를 만들어주며 길가를 밝히고 나무 위에 겨울의 눈꽃을 만들어내며 연인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크리스마스의 하루는 그렇게 져물어갔다.

 

 이후 메이슨의 방에는 고양이 인형이, 샤텐의 방에는 작은 표범, 네이린에게는 작고 귀여운 사슴, 콘대르의 방에는 갈색 곰 인형이 새로 늘어났다는 것은 스카이 포트리스에 퍼진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소문이었다. 그것을 준 이가 함장인 블리체라는 소문 역시, 믿거나 말거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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